TRIBES
부족 도감
이름은 세기마다 갈라지고 합쳐졌습니다. 지도는 한 해의 영토가 아니라, 글에서 그 이름이 주로 나오는 자리를 기억하기 위한 도식입니다. 킴브리와 튜톤의 언어, 고트의 스칸디나비아 기원은 불확실하다고 표시합니다.
Cimbri
전설과 역사가 섞임킴브리
기원전 113년 무렵부터 남하해 로마 군대를 여러 번 이긴 뒤, 기원전 101년 베르켈라이에서 마리우스에게 무너진 무리입니다. 튜톤과 함께 이야기됩니다.
- 고대 작가는 이들을 게르만족으로도, 켈트족과 헷갈리게도 적습니다. 언어가 게르만어였는지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 유틀란트에서 왔다는 말은 후대의 지리 추측입니다. 출발지를 지도에 못으로 박지 않습니다.
- 로마가 이들을 막지 못하면 이탈리아가 위험해진다는 공포는,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이 이야기되는 배경입니다.
조금만 더펼치기접기
함께 움직인 이름으로 암브로네스, 티구리니가 나옵니다. 전투의 큰 연대는 플루타르코스 『마리우스』와 리비우스 요약에 기댑니다. 병력 수는 고대 문장 안에서 커지는 경우가 많아, 이 사이트는 머릿수를 단정하지 않습니다.
Cimbri · 기원전 2세기 말
Teutones
전설과 역사가 섞임튜톤
킴브리와 함께 남하했다가, 기원전 102년 아쿠아이 섹스티아이(오늘의 엑상프로방스 근처)에서 마리우스에게 진 쪽입니다.
- 튜톤이라는 이름은 뒤에 ‘게르만 전체’를 가리키는 말(Teutonic)로 넓어집니다. 기원전 2세기의 이 무리와 그 후대 형용사는 다릅니다.
- 암브로네스가 이 전투에서 함께 언급됩니다.
- 킴브리와 마찬가지로, 언어와 출발지는 불확실합니다.
Teutones / Teutoni · 기원전 2세기 말
Suebi
역사수에비
카이사르가 라인 동쪽의 크고 호전적인 무리로 적은 이름입니다. 한 왕국이라기보다, 여러 집단에 붙는 넓은 이름이었고, 5세기에는 이베리아 북서부에 수에비 왕국이 생깁니다.
- 아리오비스투스는 카이사르가 수에비 왕으로 부릅니다. 기원전 58년.
- 타키투스는 수에비 매듭이라는 머리 모양을 적습니다. 그 문장이 모든 늪지 유물의 설명서는 아닙니다.
- 뒤의 알라만니, 마르코만니, 콰디를 수에비 계열로 묶는 고대 문장이 있습니다. 혈통 증명으로 읽지는 않습니다.
조금만 더펼치기접기
이베리아의 수에비 왕국은 갈리시아 쪽에 자리 잡았고, 6세기 후반 서고트에 흡수됩니다. 카이사르 시대의 라인 수에비와 같은 정부가 이사 간 것은 아닙니다. 이름이 이어진 것과 국가가 이어진 것을 구분합니다.
Suebi · 기원전 1세기–서기 5세기
Cherusci
역사케루스키
베저 강 일대로 비정되는 부족입니다. 아르미니우스와 플라부스의 부족이고, 서기 9년 동맹의 중심이었습니다. 1세기 후반이면 로마 사료에서 존재감이 얇아집니다.
- 세게스테스 쪽은 로마와 협력하고, 아르미니우스 쪽은 맞섰습니다. 부족이 한마음으로 움직인 것이 아닙니다.
- 클라우디우스 시대에 로마는 플라부스의 아들 이탈리쿠스를 케루스키의 왕으로 보냅니다. 타키투스 『연대기』 11.16.
- 중세 작센과 곧장 같은 나라로 잇는 증거는 없습니다.
Cherusci · 서기 1세기
Chatti
역사카티
라인 동쪽, 대략 오늘의 헤센 쪽으로 비정되는 부족입니다. 타키투스는 규율이 있다고 적고, 게르마니쿠스와 도미티아누스 시대의 전쟁에 이름이 나옵니다.
- 서기 9년 동맹에 이름을 올리는 고대 서술이 있습니다. 그 동맹의 내부 서열은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 드라마 『바바리안』의 하드간은 카티의 족장으로 나오지만, 그 인물은 창작입니다.
- 뒤의 프랑크 이름 안으로 일부 집단이 녹아든다는 현대 정리가 있으나, 한 해의 합병 문서는 없습니다.
Chatti · 서기 1–3세기
Bructeri
역사브룩테리
립페 강과 엠스 강 사이로 비정됩니다. 게르마니쿠스가 서기 15년 이 쪽에서 제19군단의 독수리 깃발을 되찾았다고 타키투스가 적습니다.
- 토이토부르크 동맹에 포함된 이름으로 자주 오릅니다.
- 독수리 회수는 브룩테리 ‘전체의 항복’과 같은 문장이 아닙니다.
- 드라마의 베룰프는 브룩테리 전사로 나오지만 실존 인물이 아닙니다.
Bructeri · 서기 1세기
Batavi
역사바타비
라인 하구, 오늘의 네덜란드 쪽 섬과 강변에 살며 로마 보조군의 이름을 높인 집단입니다. 서기 69–70년 율리우스 키빌리스가 반란을 이끌었습니다.
- 지도층은 로마식 이름을 가진 시민이 많았습니다. ‘로마를 모르는 숲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 키빌리스의 반란은 네 황제의 해(69년)를 틈탄 전쟁입니다. 타키투스 『역사』.
- 타키투스의 그 책은 끝이 잘려 있어, 강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의 문장으로 읽을 수 없습니다.
Batavi · 서기 1세기
Marcomanni
역사마르코만니
보헤미아 일대에 왕국을 만든 무리로 적힙니다. 1세기 초 왕은 마로보두스이고, 2세기 후반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긴 전쟁의 한쪽입니다.
- 마로보두스는 아르미니우스와 손을 잡았다가 갈라진 것이 아니라, 라이벌에 가깝습니다. 뒤에 로마 영토 라벤나로 망명합니다.
- 마르코만니 전쟁의 상대에는 콰디와 다른 다뉴브 집단이 함께 나옵니다.
- 영화 『글래디에이터』 오프닝의 게르마니아 전투는 이 전쟁의 분위기를 빌린 창작입니다.
Marcomanni · 서기 1–2세기
Quadi
역사콰디
마르코만니의 동쪽, 다뉴브 중류 북쪽으로 비정되는 이웃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전쟁과, 4세기 발렌티니아누스 1세의 전선에 이름이 계속 나옵니다.
- 독자 카드로 둘 만큼 사료가 짧습니다. 마르코만니와 붙여 읽는 편이 안전합니다.
- 왕을 로마가 승인하거나 폐하는 관계가 반복됩니다.
- 정확한 생활 영역은 세기마다 움직입니다.
Quadi · 서기 1–4세기
Goths
전설과 역사가 섞임고트
3세기에는 흑해 북쪽에서 로마의 다뉴브·발칸·소아시아를 치는 이름으로 나타나고, 뒤에 서고트와 동고트로 갈라져 이야기됩니다. 스칸디나비아에서 왔다는 요르다네스의 기원은 전승입니다.
- 서고트의 큰 이름은 알라리크(410년 로마)와 툴루즈·톨레도 왕국입니다.
- 동고트의 큰 이름은 테오도릭이 이탈리아에 세운 왕국(493–553년 무렵)입니다.
- 요르다네스 『게티카』(6세기)는 고트에 우호적이고, 카시오도루스의 잃어버린 역사를 옮긴 부분이 있습니다. 기원 신화와 전쟁 기사를 같은 밀도로 믿지 않습니다.
조금만 더펼치기접기
테르빙기와 그레우퉁기라는 4세기의 이름이, 뒤의 서고트·동고트와 어떻게 겹치는지도 연구가 나뉩니다. 이 사이트는 ‘고트’를 하나의 생물학적 민족으로 쓰지 않고, 로마가 상대했던 정치적 이름들의 묶음으로 적습니다.
Gothi · 동고트 Ostrogothi · 서고트 Visigothi · 서기 3–6세기
Vandals
역사반달
406년 무렵 라인 강을 건너 갈리아와 히스파니아로 갔고, 가이세리크가 429년 아프리카로 건너가 439년 카르타고를 차지했습니다. 455년 로마를 약탈하고, 534년 벨리사리우스에게 왕국이 무너집니다.
- 하스딩과 실링이라는 갈래 이름이 있습니다. 히스파니아에서 실링 쪽은 일찍 약해집니다.
- 알라니와 함께 움직인 시기가 있어, 가이세리크의 칭호에는 알라니의 왕도 들어갑니다.
- 영어 vandalism(파괴 행위)은 이 약탈의 기억에서 후대에 생긴 말입니다. 5세기의 자기 이름은 아닙니다.
Vandali · 서기 5–6세기
Franks
역사프랑크
3세기 로마 사료에 라인 하류의 약탈자로 나타난 이름입니다. 5–6세기 클로비스가 갈리아의 여러 무리를 합쳤고, 8–9세기 카롤링 왕조가 서로마 이후 가장 넓은 게르만계 제국을 만듭니다.
- 살리 프랑크와 리푸아리 프랑크처럼 갈래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파리의 한 왕국은 아니었습니다.
- 클로비스의 세례 연도는 496년으로도 508년으로도 읽힙니다.
- 카롤링 가문은 메로빙 왕의 아들이 아니라, 궁재 가문이 왕위를 넘겨 받은 것입니다.
Franci · 서기 3–9세기
Alemanni
역사알라만니
라인 상류와 다뉴브 상류, 로마가 비웠던 삼각지(아그리 데쿠마테스) 쪽에 자리 잡은 연합 이름입니다. 프랑스어 알마뉴, 스페인어 알레마니아처럼 ‘독일’을 가리키는 말의 조상입니다.
- 3세기 중반 라인 국경이 안쪽으로 밀릴 때 이름이 커집니다.
- 클로비스가 이겼다는 톨비악 전투는 그레고리우스가 적지만 해는 불확실합니다.
- 하나의 왕국으로 오래 가기보다, 프랑크 왕국 안의 공국으로 흡수됩니다.
Alamanni · 서기 3–6세기
Burgundians
전설과 역사가 섞임부르군트
라인 중류의 보름스 쪽에 있었다가 5세기 중반 리옹·제네바 쪽(사파우디아)으로 옮겨 왕국을 만든 집단입니다. 534년 무렵 프랑크에 병합됩니다.
- 437년 무렵 훈족에게 크게 졌다는 기사는, 뒤의 『니벨룽의 노래』가 가져온 역사의 씨앗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 그 서사시의 지크프리트와 보물과 복수는 중세 문학입니다. 5세기의 연대기로 읽지 않습니다.
- 오늘의 프랑스 지역 이름 부르고뉴는 이 왕국에서 왔지만, 중세에 여러 번 다른 정치체가 됩니다.
Burgundiones · 서기 5–6세기
Saxons
역사색슨
북해 연안에서 브리타니아 남쪽과 갈리아 해안을 친 이름이고, 일부는 브리타니아에 정착해 앵글·유트와 함께 앵글로색슨이라 불리게 됩니다. 대륙에 남은 작센은 카롤루스의 긴 전쟁의 상대입니다.
- 바다의 색슨과, 엘베 강의 대륙 작센, 잉글랜드의 색슨 왕국은 친척 이름이되 한 정부는 아닙니다.
- 브리타니아 상륙을 449년 한 해의 사건으로 적는 것은 베다의 전승 연대입니다.
- 카롤루스의 작센 전쟁은 772–804년입니다. 782년 베르덴의 학살 숫자는 프랑크 연대기의 숫자이고, 읽기에 다툼이 있습니다.
Saxones · 서기 3–9세기
Angles
전설과 역사가 섞임앵글
유틀란트 남쪽의 앙겔른에서 이름을 가져왔다고 베다가 적은 무리입니다. 브리타니아로 건너가 노섬브리아, 머시아, 이스트앵글리아 같은 왕국의 이름이 됩니다. 잉글랜드(England)는 ‘앵글의 땅’입니다.
- 유트(Jutes)는 베다가 켄트·와이트 쪽에 정착했다고 적은 셋째 이름입니다. 고고학으로 세 집단을 깨끗이 나누기는 어렵습니다.
- 대륙의 출발지와 배 한 척의 상륙일은 전승입니다.
- 색슨 카드와 함께 읽는 편이 맞습니다.
Angli · 서기 5–6세기
Lombards
전설과 역사가 섞임랑고바르드
1세기 타키투스에도 엘베 강의 작은 이름으로 나오지만, 역사의 큰 등장은 568년 알보인 아래 이탈리아로 들어온 때입니다. 파비아를 중심으로 왕국을 이루었다가 774년 카롤루스에게 무너집니다.
- 파울루스 디아코누스의 『랑고바르드 역사』는 8세기 말의 글이라, 엘베 시절의 기원은 전승이 많습니다.
- 이탈리아 북부 지명 롬바르디아는 이 왕국에서 왔습니다.
- 동고트 왕국이 끝난 뒤의 이탈리아에 들어온 것이지, 테오도릭의 고트와 같은 왕조가 아닙니다.
Langobardi / Lombards · 서기 6–8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