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ks
전설과 역사가 섞임프랑크 왕국
클로비스 481년 무렵–카롤루스 814년
클로비스가 갈리아의 프랑크를 모아 메로빙 왕조를 열었고, 8세기 궁재 가문 카롤링이 왕위를 넘겨받아 카롤루스 대제 때 가장 넓어집니다. 800년 크리스마스 대관은 서로마 황제 칭호가 서쪽에서 다시 쓰인 사건입니다.
- 메로베크는 왕조 이름의 조상으로 전하지만, 실존 전기는 거의 없습니다. 전설에 가깝습니다.
- 클로비스의 아버지 킬데리크 1세는 투르네 무덤 유물로 실존이 뒷받침됩니다.
- 751년 피핀 3세가 마지막 메로빙 왕 킬데리크 3세를 폐하고 왕이 됩니다. 혈통이 이어진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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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비스의 아들 대에 왕국은 네 갈래로 나뉩니다. 테우데리크, 클로도메르, 킬데베르트, 클로타르. 클로타르 1세가 558년 무렵 다시 합칩니다. 그 뒤에도 분열과 합체가 반복됩니다. 관계도의 클로타르는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이지 외아들이 아닙니다.
카롤루스의 작센 전쟁(772–804)은 대륙 색슨을 강제로 기독교 프랑크 질서에 넣은 전쟁입니다. 782년 베르덴에서 4,500명을 목 베었다고 『프랑크 왕국 연대기』가 적습니다. 숫자와 동사의 읽기는 역사가들 사이에 다툼이 있습니다.
800년 12월 25일 교황 레오 3세가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카롤루스에게 황제 관을 씌웠습니다. 아인하르드는, 카롤루스가 그 계획을 알았더라면 성당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적습니다. 아인하르드의 전기는 황제에게 우호적입니다.
이 왕국을 사건 그대로 다룬 극은 목록의 중심에 두지 않았습니다. 영화·드라마에서 시대가 가까운 작품만 골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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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루스 대제가 서기 800년 황제가 된 세대 다음, 북해 연대기에서 자주 그 뒤를 잇는 칸이 793년 린디스판 습격입니다. 앵글로색슨 연대기는 그 해 노섬브리아의 수도원 습격을 적습니다. 바이킹 시대의 항해, 약탈, 정착은 이어지는 사이트에 둡니다.
카롤루스가 린디스판을 일으킨 것은 아닙니다. 시간표가 이어질 뿐입니다.
근거로 삼은 기록
- 그레고리우스 투르 『프랑크 역사』 · 클로비스. 6세기 말, 성직자의 글입니다
- 『프랑크 왕국 연대기』(Annales regni Francorum) · 카롤링 시대의 공식 연대기
- 아인하르드 『카롤루스 대제의 생애』 · 800년 대관과 성품. 측근의 전기입니다
인용문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책 이름과 위치만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