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ck of Rome, 410
역사알라리크의 로마 약탈
서기 410년 8월
서고트의 알라리크가 로마 시를 점령하고 사흘간 약탈했습니다. 서로마가 그 해에 멸망한 것은 아닙니다. 황제는 라벤나에 있었고, 제국의 서쪽 정부는 그 뒤로도 66년을 더 갑니다.
- 왜
- 알라리크는 정착지와 군량, 직위를 요구하며 이탈리아를 여러 번 협박했습니다. 408년 스틸리코가 처형되고 고트 병사들의 가족이 학살된 뒤 협상은 더 나빠졌습니다.
- 누구
- 알라리크의 서고트와, 호노리우스의 서로마 조정. 스틸리코는 반달계 아버지와 로마 경력을 가진 장군이지 게르만 왕이 아닙니다.
- 결과
- 도시는 약탈당했으나 불바다로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알라리크는 같은 해 이탈리아 남부에서 죽었습니다. 서고트는 갈리아로 올라가 왕국을 만듭니다.
- 오로시우스는 성당이 피난처가 되었고 약탈이 비교적 짧았다고 적습니다. 그의 글은 그리스도교 변론입니다.
-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은 이 충격에 답하려고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 알라리크를 부센토 강바닥에 묻고 인부를 죽였다는 이야기는 요르다네스의 전승입니다. 발굴로 확인된 사실이 아닙니다.
이 장을 사건 그대로 다룬 유명한 극은 목록에 넣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있는 작품만 영화·드라마에 모아 두었습니다.
근거로 삼은 기록
- 오로시우스 『역사에 맞선 역사』 7.39 · 약탈의 사흘과 성당
- 조시무스 · 408년 전후의 정치. 410년 직전에서 기록이 끊기는 부분이 있습니다
- 요르다네스 『게티카』 · 알라리크의 죽음과 부센토 강. 전승입니다
인용문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책 이름과 위치만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