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an campaigns
역사아우구스투스의 게르마니아 원정
기원전 16–서기 6년 무렵
아우구스투스는 라인에서 엘베까지를 로마의 영향 아래 두려고 의붓아들 드루수스와 티베리우스를 보냈습니다. 서기 9년 직전에 게르마니아는 거의 속주가 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 왜
- 기원전 16년 로올리우스의 패배(클라데스 롤리아나)로 군단 독수리 하나를 잃었고, 아우구스투스는 라인 너머를 그냥 두지 않으려 했습니다.
- 누구
- 드루수스(기원전 12–9년), 그 뒤 티베리우스. 총독으로 뒤에 바루스가 부임합니다.
- 결과
- 드루수스는 엘베까지 닿았으나 기원전 9년 낙마로 죽었습니다. 영구 속주로 만드는 일은 서기 9년에 멈춥니다.
- 드루수스의 죽음은 말에서 떨어진 사고라고 수에토니우스 등이 전합니다. 게르만 전사의 창에 쓰러졌다는 식의 결투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 로올리우스 때 잃은 독수리는 서기 9년의 세 군단과 다른 사건입니다. 드라마가 합쳐 그린 독수리 도난과 구분합니다.
- 여름 원정과 라인 주둔지를 오가는 방식이었지, 이탈리아 같은 도시 속주는 아직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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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6년 무렵 티베리우스는 마로보두스의 마르코만니 왕국을 치려다 판노니아의 큰 반란 때문에 돌아섭니다. 게르마니아의 ‘거의 끝난 정복’은 두 전선을 동시에 유지하지 못한 제국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이 장을 사건 그대로 다룬 유명한 극은 목록에 넣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있는 작품만 영화·드라마에 모아 두었습니다.
근거로 삼은 기록
-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 54–56권. 드루수스와 티베리우스의 원정
- 수에토니우스 『아우구스투스』, 『클라우디우스』 · 로올리우스, 드루수스의 죽음
- 벨레이우스 파테르쿨루스 · 티베리우스에 우호적인 짧은 로마사
인용문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책 이름과 위치만 적습니다.